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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최근 재밌게 읽은 책들 중 하나. 

무지개 곶 찻집. 제목만 바라보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위태롭게 솟아있는 곶 가운데 오래된 나무들로 지어진 소박한 카페, 그리고 그 뒤로 적당히 노을 진 하늘에 비친 장엄한 무지갯빛.

이 그림 하나에 사랑과 이별, 그리고 정이 깃들어있다.

책의 테마를 사계절 + 봄, 여름으로 정한 것 또한 굉장히 인상 깊었다.

시간의 흐름과 각 계절의 특성이 물들여진 책을 읽다 보면 내 마음도 계절 따라 같이 설레고 후덥지근해지며, 또 쓸쓸해지는 느낌이다. 

 

 

 

 

처음 책을 펼치고 만난 , <Amazing Grace>


살랑이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스토리를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아내를 잃은 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등장한다. 모순적인 이 상황들이 그들의 아픔을 더욱 뚜렷하게 비춰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계절마다 찻집의 주인, 에쓰코가 노래를 추천해준다. 이 책의 챕터를 거의 다 노래 제목으로 지은 것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찾아 듣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찻집의 향긋한 커피와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서 한 편의 여유를 선물해주고픈 작가의 배려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여름, <Girls On The Beach>


취준생 겐은 험난한 여행 중 우연히 찻집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꿈을 되찾고 사랑이 싹트는 열정 가득한 여름 이야기. 이러한 겐을 위한 에쓰코의 추천곡, "Girls On The Beach"는 제목만큼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곡이다.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찻집의 스피커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여름 특유의 청량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 내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을, <The Prayer>


사업의 실패와 빚, 가족 모든 것을 잃고 결국 도둑질을 하게 된 초보 도둑이 등장한다. 찻집에 도둑질을 하러 왔다가 에쓰코의 친절함과 다정함이 주는 힘에 빠져들어 칼갈이였던 본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점차 깨닫게 된다. 에쓰코는 도둑이 창문으로 몰래 들어오는 것을 계속 지켜보다가 마치 아기를 달래듯이 대화를 이어 나가며 초보 도둑이 처한 상황을 알아가려 애쓴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무조건 경찰에 신고부터 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에쓰코는 달랐다. 초보 도둑이 찻집에 걸려있는 무지개 그림을 넋 놓고 바라볼 때부터 이미 그를 용서했다. 이러한 에쓰코의 남다른 통찰력은 닮고 싶을 정도로 놀라운 다정한 힘을 준다. 

 

 

 

 

 

겨울, <Love Me Tender>


에쓰코를 짝사랑하는 찻집의 단골손님 다니 씨.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먼 지방으로 떠나는 상황에서 에쓰코와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어 찻집을 방문한다. 중년이 훨씬 지난 나이임에도 이렇게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다. 사랑은 나이에 관계없이 언제나 순수하고 아름답다. 

 

 

 

 

 

다시 봄, <Thank You For The Music>


에쓰코의 조카, 고지는 찻집 바로 옆에 라이브 카페를 만들게 된다. 20대 시절 결성한 밴드를 그리워하며 자신이 차린 라이브 카페에서 다시 한번 공연을 하길 원하지만 그 당시 보컬이었던 쇼와 사이가 좋지 않아 망설인다. 고지는 쇼와의 사이를 라이브 카페를 통해 몇십 년 만에 풀게 된 것이다. 우리도 인생에서 싸우고 화해를 하지 못한 친구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다 추억이라지만 무언가 찜찜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고지와 쇼처럼 잊고 살다가 몇십 년 뒤에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여름, 곶과 바람과 파도소리.


유일하게 에쓰코의 이야기를 담아낸 에피소드다. 찻집에 걸려있는 무지개 그림은 이별한 남편이 그린 그림이다. 그 무지개를 보기 위해 곶에 찻집을 짓고 매일 오후가 되면 노을이 진 바다 사이로 무지개를 찾는다. 태풍이 온 날 다음, 에쓰코는 이때까지 자신이 찾은 무지개가 오후가 아닌 아침에 뜨는 무지개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찻집을 열 준비를 하러 간다. 그때 에쓰코가 본 무지개는 그림 속 무지개와 똑같은 모습이었을까. 나의 생각은, 그랬으면 좋겠다. 남편을 너무나 그리워하던 에쓰코였으니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 저 카페 한 번 가보고 싶다!'

 

이 소설은 일본 치바 현에 있는 실제 카페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여러 군데 찾아보니 실제 카페 주소를 알 수 있었다. 

 

 

생각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카페의 분위기만큼은 충분히 책 속의 찻집과 비슷하다.

솔직히 막 읽고 난 후에는 그냥 잔잔하고 기분 좋은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 써보니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감동 있는 책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리뷰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좋은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꼭 저곳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

찻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각자 사연을 들고 찾아간다. 아마 찻집을 방문하는 나의 사연은 취준생 겐의 사연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에쓰코와 함께 무지개를 만날 날들을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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